kbs 고려거란전쟁의 하이라이트, 귀주대첩
1019년 2월, 거란군이 세번째로 고려를 침략하였으나 고려군의 거센 저항으로 고려 정벌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퇴각했다.
귀주대첩은 퇴각하는 거란군이 귀주를 지날 때 고려군 총사령관 강감찬이 거란군에 맞아 거란군을 무찌르고 엄청난 피해를 입힌 전투를 말한다. 역사를 알고 시청하면 더 재미있는 대화사극이 됩니다.
#거란의 침입
993년 거란 1차 침입 : 서희담판 강동6주 획득 고려는 송나라 대신 거란연호 사용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 이듬해 현종이 나주로 파천 1015년 흥화진, 영주성에 침입한 거란군을 격퇴
1018년 거란 3차 침입 : 소배압을 비롯한 10만 거란군이 세 번째로 고려를 침공
1015년 4월에는 거란의 장군 야율행평을 고려에 사신으로 보내 강동 6주를 반환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고려는 그를 억류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고란은 거란은 또다시 대대적인 전쟁을 일으켜 고려를 압박하게 된다. 이 전쟁이 거란 3차 침입이다.
거란군이 동경 요양부에서 출정 준비를 할 즈음, 고려에서는 서북면 행영도통사 강감찬을 상원수로, 20만 8,000명의 군사를 청천강 남쪽의 영주 일대에 배치하였다.
1018년 12월, 압록강을 넘은 거란군은 흥화진의 삼교천에서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과 첫 전투를 벌였다. 삼교천은 흥화진성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이었다. 강감찬은 기병 1만 2,000명을 미리 주변 산골짜기 안에 매복시켜 놓고 큰 밧줄로 소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삼교천 물을 막고 기다리다가 적이 삼교천을 건널 때, 물을 터놓고 매복해 있던 군사들을 일으켜 거란군에게 대승을 거두었다.
고려 현종(顯宗)은 개경성 바깥의 백성들을 모두 성안으로 옮기도록 하고, 거란군이 개경 주변에서 식량과 군수품 등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들판의 작물과 가옥을 모두 철거했다.
압록강을 건넌 뒤 고려군에게 잇따라 전쟁에서 패배하고 철수하게 되는데 강감찬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여러곳에서 매복과 기습을 해서 많은 피해를 입히는데 거란군은 압록강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귀주에서 강감찬의 고려군에게 마지막 일격을 당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귀주대첩이다.
고려사절요
죽어 넘어진 시체가 들판을 덮고, 사로잡은 군사와 말, 낙타, 갑옷, 투구, 병기는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었다.
거란군 10만 명 가운데 살아 돌아간 자는 지휘관인 소배압을 포함해 겨우 수천 명뿐이었다.
고려는 993년 이래 세 차례에 걸친 거란의 침입에서 모두 이겼지만, 이 가운데 가장 큰 승리를 거둔 것이 3차 전쟁 때였다.
3차 전쟁이 끝난 뒤 고려는 추가 전쟁에 따른 희생을 막기 위해 거란에 대한 사대 관계 다시 회복하면서 양국은 화해 국면으로 들어섰고,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는다. 양국 간의 문물 교류도 활발해졌다.
송나라도 거란을 견제하기 위해 고려와 친선 관계를 유지해 나갔고, 이 과정에서 고려는 송나라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경제적, 문화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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